없는 병도 만드는 건강 염려증

- 전문의 칼럼 2011/08/22 11:19 Posted by 하이닥

‘재물을 잃은 것은 조금 잃은 것이요, 명예를 잃은 것은 많이 잃은 것이요, 건강을 잃은 것은 모두 잃은 것이다.’라는 글귀가 말하듯이 누구나 건강을 잃을 것에 대해 염려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얼마 전에 50.세 남자가 우측 옆구리가 몇 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아파서 의사를 방문하였다. 의사는 진찰을 한 후 몇 가지 기본적인 검사를 했으나, 특별한 이상은 발견할 수 없었다. 환자에게 이상이 없으므로 통증 치료만 하고 경과를 관찰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러나 환자는 만족스러워 하지 않고 정밀검사와 엉덩이 주사 맞기를 간절히 원했다. 진료하던 의사는 매우 당황하였다. 환자와 잠시 면담하던 중 ‘엉덩이 주사’의 의미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환자는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환자는 젊어서 결핵성 늑막염을 앓은 적이 있었다. 이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경험이었는데, 환자는 당시에 엉덩이 주사로 맞았던 항생제 덕분에 이런 큰 위험으로부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환자는 지금 다시 이러한 재난이 자신에게 닥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불안해했으며, 그때 맞았던 신통한 항생제 주사를 미리 맞아 두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이다.

우리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과거의 고통이나 가까운 인척이나 이웃이 경험한 끔찍한 재난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우리는 이런 재난이 나에게 닥치지 않기를 원하며 이를 미리 막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고 싶은 것이다.

‘건강 염려증(hypochondriasis)’이란 말은 본래 정신과 질환에 속한다. 영어의 어원을 생각해 보면 그 말 자체는 hypochondrium, 즉 좌측 늑골 아래의 복부 질환이라는 뜻에서 출발하였는데, 아마도 과거에는 이병의 근원이 이곳에서(특히 비장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미국 정신과학회의 질병 진단 기준에 따르면 건강 염려증은 질병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신체 증상을 잘못 해석하여 스스로 심각한 질병에 걸렸다는 혹은 걸릴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런 생각은 의사가 적절하게 진단 평가를 하고 괜찮다고 말해 주어도 없어지지 않고 지속된다. 또한 환자는 이런 생각 때문에 심각할 정도로 고통을 당하고 있으며 사회적, 직업적 기능에서 곤란을 겪는다. 이런 증상은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6개월 이상 지속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건강 염려증을 앓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겠으나, 건강에 대한 지나친 염려로 의사를 여러 번 방문하여 복잡한 진찰과 여러 가지 비싼 검사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왼쪽 가슴이 뜨끔뜨끔 지속적으로 아픈데 심장에 이상이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심장에 이상이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있는 정밀검사가 무엇입니까? 가능한 모든 검사를 다 받고 싶습니다.’ 이렇게 건강에 염려하는 분들은 자칫 여러 의사를 방문하기 쉽다. 자신의 증상에 대하여 명백한 진단(이상 소견)을 붙여 줄 수 있는 의사를 만날 때까지 끊임없이 의사를 찾게 되지만 결국은 성공하지 못한다. ‘신경성’ 혹은 ‘건강 염려증’이라는 딱지만 달고 마는 것이다.

건강에 대해 염려하는 것이 반드시 잘못된 것은 아니다. 누구나 건강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으며, 어느 정도의 건강에 대한 염려는 신체에 좋은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다. 자신의 건강에 대한 관심과 염려가 없다면 자신의 신체를 전혀 돌보지 않게 될 것이다.

이제 건강에 대해 지나치게 염려하여 건강 염려가 짐이 되는 것을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도록 한다.

첫째로, 자신의 사소한 증상을 가장 좋지 않은 질병과 연결시키는 사고의 습관을 피하도록 한다. 우리는 어떤 증상의 명백한 증거가 밝혀지지 않으면 가장 험악한 질병이 얼굴을 감추고 숨어 있으리라고 상상하며 염려한다. 그러나 검사 상 명백한 증거가 나타나지 않는 우리의 신체 증상들은 대부분 기능적 증상이다. 이런 기능적 이상은 어떤 방사선 검사나 병리적 검사로 잘 잡히지 않아서 명백한 이상 소견을 얻을 수 없다.

둘째로, 모든 증상의 원인이 신체 어느 부분의 생물학적인 이상일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피한다. 우리가 느끼는 신체 증상들은 생물학적인 원인뿐만 아니라 심리적, 사회적 요인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자신이 느끼는 사소한 신체 증상의 원인을 생물학적인 이상에만 고착하여 생각하는 습관을 버리고, 사회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함께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로, 자신의 단골의사를 신뢰하는 마음을 갖는다. 자신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의사는 자신을 계속해서 진료해 주고 있는 단골의사이다. 스스로의 증상에 대하여 만족한 대답을 얻지 못했다고 해서 다른 의사를 찾아가는 것은 시간과 자원의 낭비에 불과한 일이다. 가장 훌륭한 의사는 모든 증상의 경과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 본 의사일 것이다.

넷째로, 건강에 대한 적절한 염려는 오히려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이런 염려가 너무 심해서 염려의 노예가 되지만 않는다면 적절한 염려는 오히려 건강 증진을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다. 건강에 대한 염려의 감정을 불편해하며, 이런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애쓰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염려의 감정(불안감)이 있음을 오히려 즐거워 할 수 있는 삶이 필요하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의사가 쓸데 있다는 말씀이 있다. 우리는 때때로 건강할 때에도 건강 증진을 위해 의사와 상담을 나눌 때가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병들지 않았으나 의사를 필요로 하는 것은 건강에 대해 지나치게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단국대병원 가정의학과 박일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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